[스크랩] [중도일보] 생글생글 안희정의 `본색`은?
[중도시평] 김학용 인터넷국장
안희정 충남지사는, 많은 사람들이 '안희정'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와 사뭇 다르다. 도지사 선거에 나설 때 그에겐 논쟁적이고 그래서 딱딱하고, 좀 차가울 것이라는 선입견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TV 토론에 나온 그는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생글생글 웃었다.
돌이켜보면, 말하는 내용도 과격하지 않았다. 전국 공통 이슈였던 세종시와 4대강 문제를 제외하곤 대체로 자기 주장을 강하게 펼친 편은 아니었다. 변화를 위한 새로운 리더십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과거 선배들의 노고를 무시하지 않았다. 당선되면 반드시 무엇을 해내겠다 식의 업적지향성 공약도 아니었다. 교육이나 복지에 더 힘쓰겠다는 정도였다. 그의 공약을 다시 뒤적여봐도 그렇다. 공약 내용들은 좀 추상적으로까지 보인다.
그가 내세울 주장과 공약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중3 때 ‘박정희 시해 사건’을 계기로 세상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때는 ‘정치문제’에 직접 참여하다가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었다. 대통령을 만드는 데 큰 공을 세웠고, 권력자의 국정운영을 가까이서 관찰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도지사가 된 뒤에도 자기 얘기는 별로 하지 않고 있다. 대신, 얘기하는 방법인 ‘대화와 소통’ 그리고 이를 통한 ‘변화’를 말하고 있다.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섞여 줄을 서서 식판을 들고 배식을 받고,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로 지사 본인이 가서 업무보고를 받는다. 소통을 위한 노력이라고 측근들은 말한다.
그러나 충남도 공무원들은 아직 안 지사의 웃음을 편안하게 여기지 못하는 듯하다. 어떤 공무원은 도청 분위기를 '폭풍전야의 고요함'에 비유한다. 안 지사가 언젠가는 도청을 뒤집어 놓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안 지사도 자신이 한때 최고 권력의 최측근으로 영욕의 시간을 보낸, ‘보통은 아닌’ 사람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아무리 부드럽게 대해도 자신의 남다른 '과거'때문에 거리감 같은 게 느껴질 수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어떤 조직이든 개혁가가 수장(首長)이 되면 조직원들은 두려움을 갖는다. 도 공무원들은 안 지사가 ‘본색’을 감추고 있다면 하루빨리 제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낫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사람은 상대를 안 뒤에 더 편안해지는 법이니까.
과연 안 지사의 ‘부드러운 리더십’은 전략인가? 그는 아직 ‘본색’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인가? 그는 정녕 언젠가 폭발하고야 말 신념에 찬 ‘개혁가’인가? 그래서 결국은 충남도 행정도 한번 뒤집고야 말 것인가?
그에게 선입견이 없지 않던 사람들이 여전히 갖고 있는 의문이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아직 의문은 여전하지만, 그의 주변 사람들이 그에 대해 남긴 말에서 의문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추측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안희정씨에게 가장 돋보였던 것은 역시 사람 관계였다. 여러 종류의 사람들 사이에서 다양한 갈등을 다독거리고 추슬러 아주 훌륭하게 이끌어간 사람”이었다고 평했다. 또 다른 인사는 “안희정은 언제나 밝은 얼굴 경쾌한 목소리였다”고 했다.
안 지사가 강조하는 대화와 소통은 원래 그의 방식이고, 생글거리는 모습도 그의 본래 얼굴이라는 말이 된다. 안 지사의 웃는 얼굴이 '전략'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안 지사는 대화와 소통의 노력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또 도 행정을 크게 바꾸는 게 기본 입장이겠지만 확 뒤집는 변화는 시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안 지사의 웃음과 소통론은 자신이 꿈꾸고 있는 복지, 환경, 문화 분야 등의 진보적 가치에 대한 신념, 즉 자신의 '진짜 본색'을 실현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안 지사의 생글거리는 얼굴은 ‘전략’이 아닌 그의 ‘본색’으로 보이지만, 자신의 ‘진짜 본색’에 대해 경계심을 갖는 사람들에겐 이를 감추는 ‘정치적 수단’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