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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안희정님이 쓰신 민들레 이야기 너무 글이 이쁜거 같아서 퍼오오

헤즐넛 커피 2011. 9. 14. 23:04

아파트 베란다에 화분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2004년 감옥에서 나온 이후 재미를 더욱 붙인 취미입니다.


감옥에서 보낸 1년 동안 세상 살아가면서 눈 여겨 보지 않던 많은 것들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 중 단연 압권은 민들레였습니다. 


부채꼴 1인용 운동장에서 운동을 했었지요. 운동장 둘레가 보통 걸음으로 걸어서 40걸음이 채 안 되는 좁은 운동장이었습니다. 수용자들은 그 작은 운동장 테두리를 뱅뱅 돌면서 한 줌의 뙤약볕을 쏘이기도 하고 속도를 내어 뜀뛰기를 하기도 합니다.


감옥에 처음 들어갔을 때가 하얀 눈이 덮여있던 겨울이었습니다. 16년 전 학생운동 시절에, 이미 와 보았던 곳이기에 그리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저런 감회 속에 다시 들어 선 그 작은 운동장에서 제 눈을 제일먼저 잡아 끈 것은 아직도 파란 기운을 간직한 채 운동장 담벽에 널려있던 식물이었습니다. 


겨울철 김장배추를 뽑고 난 밭에서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던 그 배추 밑둥처럼 민들레는 아직도 파란 기운을 간직한 채 모진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파란 기운 덕분에 죽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요. 그런데 요놈이 봄 바람과 햇볕을 받더니 어느 날 갑자기 잎을 세우고 줄기를 세워 하늘을 향해 피어오르더군요. 


눈덮인 삭막한 감옥 담벼락 밑의 그 놈이 파란 기운을 얻어 노란 꽃잎을 하늘을 향해 내뻗던 그 순간들을 나는 아직도 파노라마처럼 기억합니다.


정작 더 감동적이었던 것은 다음에 보여준 요놈의 모습이었습니다. 노란 꽃잎을 활짝 피우던 요놈이 어느 날 갑자기 주먹 쥐듯 그 꽃잎들을 거두어들이더군요. 그리고 다시 며칠 지나지 않아 주먹처럼 거두어 드린 그 봉오리를 펼치면서 하얀 솜사탕 같은 민들레 홀씨를 펼쳐 보이던 순간이었습니다. 


마술사의 주먹 같더군요. 그동안 나는 뭐가 바쁘다고 이 신기한 장면들을 보지 못하고 살았을까 싶더군요. 그런데 저를 더 ‘뻑’가게 만든 것은 노란 꽃잎을 거두어 들여 하얀 민들레 홀씨를 만드는 모습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요놈들이 노란 꽃을 피우고 그 꽃을 거두어들인 다음에 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꽃잎을 거두어 오므라진 그 놈이 자꾸만 키를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도 뛰어넘을 수 없게 높게 만든 감옥 담벼락 밑에서 그 놈이 모가지를 늘이듯 하루가 다르게 키를 높이는 게 어찌나 신기하던지... 


기린처럼 높게 높게 모가지를 뽑아 세운 요놈이 결국에는 솜사탕 같은 민들레 홀씨를 펼치던 날, 저는 참으로 큰 감동을 먹었었지요.


왜 나는 이 모습을 보지 못했을까. 뭐가 그리 바쁘다고 민들레 꽃 피고, 홀씨 되어 날아가는 이 감동적인 과정을 보지 못했을까... 참 많이 후회했었지요. 결국 내가 기억하는 것은 노란 꽃이나 아니면 먼지처럼 털어져서 하늘에 날리는 민들레 홀씨밖에는 없다는 사실에 참 부끄러워졌었습니다.


민들레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세상에 알려진 그 하얀 홀씨들의 비상(飛上)만을 기억해선 민들레를 다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다 소중하다. 그리고 더 소중한 것은 그 결과가 아니라 눈 덮인 운동장 그늘 밑에서 겨울을 이겨내던 흉물스럽던 그 민들레 밑둥에서부터 모가지를 늘이고 늘이던 민들레의 그 전 과정을 온전히 다 이해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또 깨닫게 되지요. 온전히 세상을 바라보고 온전히 세상을 이해하는 일이 참으로 힘들구나....


어릴적 영화를 처음 볼 때, 저는 영화를 스토리나 메시지를 중심으로 보았습니다. 모든 감동은 대사로 표현되는 스토리와 메시지가 어떠하냐 였었지요. 그러다 차츰 차츰 조명, 카메라, 음향의 영역으로 영화 감상의 영역을 넓혀 가게 되더군요.


저희 집 베란다에는 2003년 지리산에서 얻어 온 지리산 주목 나무가 크고 있습니다. 어린 새싹 세 개를 갔다가 키우다가 3년 전 한 그루는 어머님 드리고 지금은 두 놈이 자라고 있습니다.

5년이나 지났지만 키는 한 뼘도 되지 않습니다.

올 봄에 좀 더 큰 화분으로 바꾸어 심어주었지요. 매 해마다 나무 가지를 한 층씩 더해가며 큽니다. 가지를 한 층으로 치고 층층이 나와 있는 그 가지 층수를 헤아리면서 요놈의 나이를 셀 수 있지요.


작년 주목 나무 옆에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잡풀 하나가 쑥 자라 올랐습니다. 제가 키운 지 5년도 넘은 지리산 주목 나무보다도 키가 훌쩍 커지더니 가을도 오기 전에 시들어서 넘어지더군요.


그 옆에는 쟈스민 오렌지가 자라고 있습니다. 요놈은 제법 볼품 있는 놈을 사다가 키웠지요. 그런데 재작년 진드기가 달라붙어 꽃은 피다 말고 지고 베란다 다른 화초에까지 엉켜 붙어 제 정원을 엉망으로 망가뜨렸지요. 진드기 약을 사다가 어지간히도 뿌렸지만 소용없었지요. 


거의 죽다시피 하던 이 놈이 이제 제법 파란 기운이 돌고, 잎이 나고 꽃망울이 다시 열렸습니다. 그런데 어김없이 다시 진드기가 들러붙었습니다. 어찌할까 하다가 하루 시간을 내어 잎사귀 뒷면 사람의 동맥 같은 잎사귀 맥에 달라붙어 있는 요 진드기 놈들을 어릴 적 내복 벗어 이 잡듯이 일일이 다 잡았습니다. 그리고 분사기 수도 호스를 이용해서 다 씻어주었지요. 


그렇게 하길 두 주일.... 마침내 요놈이 생기가 돌았습니다. 진드기가 달라붙어있던 요놈은 시름시름 앓던 병자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청년처럼 맑고 푸른 기운으로 보기에 너무도 아름답고 기쁩니다.


그 옆에는 장미 꽃 한 그루, 그 옆에는 이름도 잘 모르는 푸른 잎사귀 관상수, 그 옆에는 사과궤짝에 흙을 퍼 담아 파를 사다 심어놓았습니다. 라면 끓여 먹을 때마다 푸른 빛 살생을 당하긴 하지만...


베란다 빼곡히 화분을 키우며 세상을 이해하고 저 스스로를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세상을 이해하고 그 세상을 사랑하고 그래서 그 세상을 좀 더 나은 내일로 바꾸어 보고 싶은 게 우리 모두의 소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겠지요.  

감옥의 운동장 담벽 밑에 피었다 지는 민들레가 제게 준 교훈이었습니다. ^^* 

[출처] 민들레|작성자 안희정

출처 : 쌍코 카페
글쓴이 : ⓧ안희정_Always be happ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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