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광주를 지키며 살아온 가수 김원중, 언젠가 노무현 대통령께서 광주에 오셨을 때 이 노래를 불러드렸더니 대통령께서 하시는 말씀이 앞으로 이 노래 하실때는 `노무현이 좋아하는 노래 직녀에게`라고 소개하고 부르시라고...했다는군요 그후 가수 김원중은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가장 진실하게 정성을 다해 `직녀에게`를 불렀다는 얘기가 있지요... 대중가요에 감동받고, 가수의 손을 붙들고 자신의 감동을 전하고....... 이렇게 겸손하고 소박한 대통령이 이 나라에 앞으로 또 있을까 싶습니다 우리 안희정님 앞으로 아무리 높은 사람, 아무리 큰 사람이 되더라도 그 누구든 그 무엇이든 낮게 보지않고 작게 보지않는 겸손하고 소박한 지도자가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직녀에게 작사: 시인 문병란 이별이 너무길다 슬픔이 너무길다 선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에 노둣돌을 놓아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은하수 건너 오작교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딛고 다시만날 우리들 연인아 연인아 이별은 끝나야한다 슬픔은 끝나야한다 우리는 만나야한다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은하수 건너 오작교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딛고 다시만날 우리들 연인아 연인 이별은 끝나야한다 슬픔은 끝나야한다 우리는 만나야한다 "직녀에게"라는 나의 통일염원을 읊은 서정시는 70년대 중반쯤 <심상>이라는 시 전문지에 발표한 작품으로 1981년 창비사에서 간행된 <땅의 戀歌>란 시선집에 실려 있다. 이 시가 노래로 작곡되어 불리워진 사연은 다음과 같다. 1980년 5월 이후 검거망을 피하여 미국으로 망명한 윤한봉의 청탁에 의해 같이 활동하던 작곡가 김형성씨가 통일염원의 노래로 작곡을 하였고 그 노래는 미주와 유럽등지에서 해외동포에 의해 불리워지게 되었다. 내가 84년 제 3세계 예술제가 열리는 서독 베를린에 들렀다가 거기서 뜻있는 해외동포로부터 이 노래의 악보와 육성으로 부른 테잎을 가지고 왔다. 나는 이 노래가 국내에서도 불리워지기를 바라고 당시 전남사대 영문과를 나왔으나 딴따라 기질이 있어 방송계로 진출한 애제자 오창규군에게 건네어 주었다. 오창규는 그것을 다시 역시 교단을 버리고 통기타의 반려자가 된 노래꾼 박문옥에 건네었다. 해외에서 부르는 노래가 가곡풍인데다 국내의 정서와 맞지 않다고 판단, 일면 작곡에 대한 야심도 있었던지,그 동일 가사에다 다른 곡을 붙였다. 그리하여 새로 탄생한 민중가요 <직녀에게>는 당시 <바위섬>이라는 노래로 한창 방송가의 인기를 타고 있던 신선한 목소리의 대학생 가수 김원중을 만나 음반으로 취입되었다. 그 노래는 서서이 반향을 일으켜 <바위섬>의 여운을 이어받는 듯했으나 작사자인 내가 군부독재정권에 의해 반체제 운운하는 운동권 재야 세력 탓인지 방송가의 전파에서 조금씩 밀리는 듯했다. 그러나 이 노래는 김원중의 열창과 더불어 이 땅의 모든 현장에서 민중가수의 상징적 애창곡이 되어 이 시대의 대표적 통일염원 노래로 사랑을 받았다. 분단 반세기를 넘긴 이 시점에서 김원중의 <직녀에게>는 남북한 구석구석까지 울려퍼져 이 땅의 통일을 앞당겨올 것이며, '우리는 만나야 한다'는 그의 절규는 온 누리에 메아리칠 것이다. 문병란/ 시인출처 : 안희정아나요글쓴이 : 연탄재 원글보기메모 : 이 노래 좋아하는데 몰랐어요